Choice, not chance, determines one’s destiny.
by carflet
선거유세

 요 며칠간 TV를 켜면 월드컵 응원가가, 창문을 열면 월드컵 응원가를 개조한 선거 유세 노래가 들려오는게 민감한 사람들은 자칫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가뜩이나 오필승코리아 같은 노래를 싫어하는 나는 어서 선거가 끝나고 조용한 세상이 오기만 바랄 수밖에.

 그제는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길 건너편에 대기중이던 선거 유세 차량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며 후보자가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펼쳐질 시끄러운 쇼에 나로 모르게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기다리던 버스가 계속 오질 않아 무료하던 참이라 나는 마치 영화를 보듯 그 유세장을 관찰하기 시작했지.

 아니나 다를까 각종 응원가 메들리가 터져나오고 후보자는 우렁찬 목소리로 떠들어대다가 7~8명 가량 되는 선거원들과 박수를 주고 받는 식으로 유세가 진행되었다. 연설이 끝나고 피날레 음악이 흐르니 그 후보자는 서툰 몸짓으로 단상에서 춤까지 추었지. 십여분의 공연 후에 주연배우는 땀을 닦으며 짐을 챙겨 또 다른 공연장으로 떠났다. 마치 떠돌이 극단처럼. 아마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던 소수의 행인이나 상점주인들도 다들 무관심했으니까.

 유세현장을 지켜보고 있으니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일종의 스톡홀름신드롬인지는 모르겠으나 내방에서 들을때는 그렇게 짜증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막상 현장에서 보니 밉기보다 '저 사람들 참 애쓴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 한편으로 그들에게 시끄럽게 난리 피운다고 짜증만 낼 게 아니라 사람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크면 후보들이 시선 좀 끌어보자고 이렇게 버라이어티쇼를 하겠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말이다. 유세 시끄럽다고 선거 빨리 끝나고 조용해졌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 중에 집으로 배송된 후보 안내문 한번 제대로 살펴 본 사람도 많지는 않을테지.

 요즘은 투표권이 맛없는 식당 식권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안쓰기도 뭐하고, 굳이 쓰자니 마음 내키지는 않는 그런 권리.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반찬 좀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지 못해 꺼내드는 식권 한장에 버라이어티쇼의 시청률이 결정될 수도 있겠지. 혹은 재방여부까지도. 어찌됐든 노력한 사람이 거두어 가기를. 그리고 작게나마, 진심이 전달되기를.

by amorfati | 2006/05/30 14:04 | Beyond Silence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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