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 9권에는, 주인공이 뱅퇴유의 음악을 듣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알베르틴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짧은 장면이지만 예술과 문학에 대한 프루스트의 시선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내용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하는 여성(렘브란트가 그린 여성만큼이나 독특한)은 항상 같은 형이 아닐까? 신비스런 얼굴에 상냥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마치 그 선량함이 그때까지는 의뭉을 떨고 있던 듯이 갑자기 무서운 교만으로 변해 버리거든(속마음은 착한 듯싶건만). 아글라야에게 연서를 쓰면서, 아글라야를 미워한다고 털어놓는 나스타샤 필리포프나도, 이와 똑같은 방문 장면에서- 나스타샤 필리포프나가 가냐의 양친을 욕하는 그 방문 장면과 비슷하지만- 자기를 고약한 여자로 생각하는 카테리나 이바노프나에게 무척이나 다정하게 굴다가, 갑자기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는 그루셴카(속은 착한 그루셴카이지만)도 같은 형이 아닐까? 그루셴카도, 나스타샤도, 카르파초가 그린 창부, 아니 렘브란트가 그린 밧세바에도 못않은 독창적이자 신비적인 여성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여성의 얼굴 표정으론, 화사하고 이중이어서, 갑자기 자존심이 풀리자 여인을 딴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표정밖에 몰랐던 모양이야(무이슈킨이 가냐의 부모를 찾아가서 나스타샤에게 '당신은 이런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알료샤 역시 카테리나 이바노프나를 방문했을 때에 그루셴카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가 '회화론'에 대해 언급하면 항상 우스꽝스런 의론이어서, 언급되는 그림이라야 기껏 무이슈킨이 아무개 사형수의 이러저러한 순간, 성모 마리아의 이러저러한 순간을 묘사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따위뿐이지.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에 이바지한 새 아름다움으로 말하면 페르 메르의 경우, 피륙이나 장소가 갖는 일종의 얼, 일종의 색의 창조가 있듯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해 낸 건 인물뿐 아니라, 가옥도 창조해 냈거든. '카라마조프의 형제'에 나오는 살인의 집, 문지기가 있는 그 집은, 로고진이 나스타샤 필리포프나를 죽이는 집,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한 살인의 집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우중충하고, 기다랗고, 천장이 높고, 휑뎅그렁한 로고진의 집과 똑같이 신기하지 않을까? 한 가옥이 지닌 이 새로운 무시무시한 아름다움, 여인의 얼굴이 지닌 이 새로운 혼합의 아름다움, 이거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져온 진귀한 보배, 문예 비평가들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고골리를 비교하거나, 혹은 그와 폴 드 코크를 비교들 하지만, 이 숨은 아름다움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치 않아, 아무 흥미도 없어. 여러 소설에 같은 장면이 되풀이해서 나온다고 내가 말했지만, 소설이 매우 길고 보면 같은 소설에 같은 장면,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하곤 하지.
세비녜 부인은 엘스티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사물을 논리적인 순서로 묘사하지 않고, 다시 말해 원인부터 시작해서 묘사하지 않고, 우선 결과부터, 독자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받게 하는 결과부터 묘사하는 일이 있단 말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작중 인물을 등장시키는 투도 이와 같은 식이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의 행동으로 말하면, 바다가 공중에 떠 있듯 보이는 엘스티르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독자를 속인다고나 할까. 음험한 사내가 본바탕은 선량한 인간, 또는 그 반대임을 나중에 알고 우리는 깜짝 놀라거든."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누구를 죽여 본 경험이 있을까? 내가 읽어 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치고 '범죄의 이야기'라는 딱지를 안 붙일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도스토예프스키의 고정 관념이라 할는지, 아무튼 항상 그런 범죄 이야기를 쓰다니 자연스럽지 않아요."
"나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은 잘 모르지만, 설마하니 사람을 죽였으려구, 알베르틴. 그야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온 인간들처럼 어떤 형태로든 간에 죄를, 십중팔구 법이 금하는 형태의 죄를 알았던 게 확실해. 이런 뜻으로 도스토예프스키도 그의 작중 인물들, 하기야 완전한 범죄자가 아니라, 정상 참작의 여지 있는 작중 인물들처럼, 다소 범죄자임에 틀림없지.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는 범죄를 범할 필요조차 없었어. 작가가 몸소 겪지 않은 어떤 생활 상태에 이끌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 그래도 나는, 도스토예프스키 늘 살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서, 그 때문에 그가 나와는 아주 다른 세계의 인간처럼 느껴진다는 점을 솔직히 말해 두겠어. 나야 보들레르의 다음과 같은 시를 듣기만 해도 대경실색하거든. ('악의 꽃' 중 일부)
보들레르의 경우는 적어도 본심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방해.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모든 게 나와는 영 먼 것 같아. 인간이란 점차로 제 자신을 실현해 나가니까, 내 속에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말야.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매우 깊은 우물, 인간 영혼의 외딴 지점에 파진 우물이 여러 개 있지. 그는 참으로 위대한 작가야.
첫째,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세계는 정말로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거든. 빈번히 등장하는 어릿광대들, 레베데프, 카라마조프, 이볼긴, 세그레프 같은 어릿광대들, 그 기상천외한 행렬은 렘브란트의 '야경'에 나온 무리보다 더 괴상한 사람들이야. 그렇지만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도 렘브란트의 화중 인물들처렴 광선과 의상의 효과로 괴상하게 보이는지 모르고, 결국 흔히 있는 인물들인지도 몰라. 어쨌든 이 어릿광대들은 진실로 가득 찬, 심오하고도 독특한 인물들이자, 도스토예프스키에 특유한 인물들이지. 이 어릿광대들은 고대 희극의 등장 인물처럼, 역할이 없는 존재로 보이나, 인간의 마음의 참된 모습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지 몰라!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건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 지껄지껄하거나 쓰거나 하는 이들의 과장된 투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의 심중에서 자존심과 거만이 맡아 하는 소임을 주목했겠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애정과 제 정신을 잃은 증오, 선량과 배신, 겁과 방약무인, 이런 게 한 성격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그 성격이란 아글라야, 나스타샤, 미탸에게 수염 뽑힌 대위, 알료샤의 적이자 친구인 크라소트킨 같은 인물이, 실제 그대로의 제 '모습'을 보이는 걸 막는 자존심이자 거만이지.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또 있어, 난 아주 조금밖에 그의 책을 모르기는 해, 그래도 말야, 카라마조프 영감이 불쌍한 광녀에게 잉태시킨 죄라든가, 어머니가 될 이 여인이 모르는 사이에 운명의 복수의 도구가 되어, 역시 막연히 모성의 본능에 따라, 아니 어쩌면, 자기 몸을 더럽힌 사내에 대한 앙심과 육체적인 감사의 정이 섞인 심정에 따라서, 카라마조프 영감 집으로 분만하러 가는, 그 신비하고도, 동물적이고도, 형용키 어려운 심정의 움직임이란, 조각의 주제, 고대 예술다운 단순한 주제가 아닐가? '복수와 속죄'의 모양이 전개해 나가다 중단되었다가, 다시 이어 나가는 기둥머리의 조각이 아닐까? 이게 첫번째 삽화,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조각 중에 있는 '여성'의 창조처럼, 신비롭고, 위대하고 장엄한 삽화야, 이에 대응하는 두번째 삽화는 스무 해 남짓하게 지나서 일어나지. 미친 여인이 낳은 아들, 스메르댜코프가 카라마조프 영감을 죽이고, 카라마조프네 집안에 치욕을 가하고, 좀 뒤에, 카라마조프 영감 집의 마당에서 한 그 분만과 똑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스런 조각과 같은 행위, 또한 어렴풋하고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갖춘 행위가 계속되지, 다시 말해서 범죄를 완수한 스메르댜코프가 목을 매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는, 뒤에 가서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서 활짝 꽃필 것이 집중적으로, 아직 찡그린 우울한 형태로, 많이 있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중세기의 예술가들과 같은, 시대에 앞선 침울성이 보이는데, 이 침울성을 제자들이 언젠가는 밝게 하겠지."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하는 여성(렘브란트가 그린 여성만큼이나 독특한)은 항상 같은 형이 아닐까? 신비스런 얼굴에 상냥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마치 그 선량함이 그때까지는 의뭉을 떨고 있던 듯이 갑자기 무서운 교만으로 변해 버리거든(속마음은 착한 듯싶건만). 아글라야에게 연서를 쓰면서, 아글라야를 미워한다고 털어놓는 나스타샤 필리포프나도, 이와 똑같은 방문 장면에서- 나스타샤 필리포프나가 가냐의 양친을 욕하는 그 방문 장면과 비슷하지만- 자기를 고약한 여자로 생각하는 카테리나 이바노프나에게 무척이나 다정하게 굴다가, 갑자기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는 그루셴카(속은 착한 그루셴카이지만)도 같은 형이 아닐까? 그루셴카도, 나스타샤도, 카르파초가 그린 창부, 아니 렘브란트가 그린 밧세바에도 못않은 독창적이자 신비적인 여성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여성의 얼굴 표정으론, 화사하고 이중이어서, 갑자기 자존심이 풀리자 여인을 딴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표정밖에 몰랐던 모양이야(무이슈킨이 가냐의 부모를 찾아가서 나스타샤에게 '당신은 이런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알료샤 역시 카테리나 이바노프나를 방문했을 때에 그루셴카에게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가 '회화론'에 대해 언급하면 항상 우스꽝스런 의론이어서, 언급되는 그림이라야 기껏 무이슈킨이 아무개 사형수의 이러저러한 순간, 성모 마리아의 이러저러한 순간을 묘사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따위뿐이지.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에 이바지한 새 아름다움으로 말하면 페르 메르의 경우, 피륙이나 장소가 갖는 일종의 얼, 일종의 색의 창조가 있듯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해 낸 건 인물뿐 아니라, 가옥도 창조해 냈거든. '카라마조프의 형제'에 나오는 살인의 집, 문지기가 있는 그 집은, 로고진이 나스타샤 필리포프나를 죽이는 집,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한 살인의 집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우중충하고, 기다랗고, 천장이 높고, 휑뎅그렁한 로고진의 집과 똑같이 신기하지 않을까? 한 가옥이 지닌 이 새로운 무시무시한 아름다움, 여인의 얼굴이 지닌 이 새로운 혼합의 아름다움, 이거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져온 진귀한 보배, 문예 비평가들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고골리를 비교하거나, 혹은 그와 폴 드 코크를 비교들 하지만, 이 숨은 아름다움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치 않아, 아무 흥미도 없어. 여러 소설에 같은 장면이 되풀이해서 나온다고 내가 말했지만, 소설이 매우 길고 보면 같은 소설에 같은 장면,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하곤 하지.
세비녜 부인은 엘스티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사물을 논리적인 순서로 묘사하지 않고, 다시 말해 원인부터 시작해서 묘사하지 않고, 우선 결과부터, 독자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받게 하는 결과부터 묘사하는 일이 있단 말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작중 인물을 등장시키는 투도 이와 같은 식이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의 행동으로 말하면, 바다가 공중에 떠 있듯 보이는 엘스티르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독자를 속인다고나 할까. 음험한 사내가 본바탕은 선량한 인간, 또는 그 반대임을 나중에 알고 우리는 깜짝 놀라거든."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누구를 죽여 본 경험이 있을까? 내가 읽어 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치고 '범죄의 이야기'라는 딱지를 안 붙일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도스토예프스키의 고정 관념이라 할는지, 아무튼 항상 그런 범죄 이야기를 쓰다니 자연스럽지 않아요."
"나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은 잘 모르지만, 설마하니 사람을 죽였으려구, 알베르틴. 그야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온 인간들처럼 어떤 형태로든 간에 죄를, 십중팔구 법이 금하는 형태의 죄를 알았던 게 확실해. 이런 뜻으로 도스토예프스키도 그의 작중 인물들, 하기야 완전한 범죄자가 아니라, 정상 참작의 여지 있는 작중 인물들처럼, 다소 범죄자임에 틀림없지.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는 범죄를 범할 필요조차 없었어. 작가가 몸소 겪지 않은 어떤 생활 상태에 이끌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 그래도 나는, 도스토예프스키 늘 살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서, 그 때문에 그가 나와는 아주 다른 세계의 인간처럼 느껴진다는 점을 솔직히 말해 두겠어. 나야 보들레르의 다음과 같은 시를 듣기만 해도 대경실색하거든. ('악의 꽃' 중 일부)
보들레르의 경우는 적어도 본심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방해.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모든 게 나와는 영 먼 것 같아. 인간이란 점차로 제 자신을 실현해 나가니까, 내 속에 나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말야.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는, 매우 깊은 우물, 인간 영혼의 외딴 지점에 파진 우물이 여러 개 있지. 그는 참으로 위대한 작가야.
첫째,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세계는 정말로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거든. 빈번히 등장하는 어릿광대들, 레베데프, 카라마조프, 이볼긴, 세그레프 같은 어릿광대들, 그 기상천외한 행렬은 렘브란트의 '야경'에 나온 무리보다 더 괴상한 사람들이야. 그렇지만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도 렘브란트의 화중 인물들처렴 광선과 의상의 효과로 괴상하게 보이는지 모르고, 결국 흔히 있는 인물들인지도 몰라. 어쨌든 이 어릿광대들은 진실로 가득 찬, 심오하고도 독특한 인물들이자, 도스토예프스키에 특유한 인물들이지. 이 어릿광대들은 고대 희극의 등장 인물처럼, 역할이 없는 존재로 보이나, 인간의 마음의 참된 모습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지 몰라!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건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 지껄지껄하거나 쓰거나 하는 이들의 과장된 투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의 심중에서 자존심과 거만이 맡아 하는 소임을 주목했겠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애정과 제 정신을 잃은 증오, 선량과 배신, 겁과 방약무인, 이런 게 한 성격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그 성격이란 아글라야, 나스타샤, 미탸에게 수염 뽑힌 대위, 알료샤의 적이자 친구인 크라소트킨 같은 인물이, 실제 그대로의 제 '모습'을 보이는 걸 막는 자존심이자 거만이지.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또 있어, 난 아주 조금밖에 그의 책을 모르기는 해, 그래도 말야, 카라마조프 영감이 불쌍한 광녀에게 잉태시킨 죄라든가, 어머니가 될 이 여인이 모르는 사이에 운명의 복수의 도구가 되어, 역시 막연히 모성의 본능에 따라, 아니 어쩌면, 자기 몸을 더럽힌 사내에 대한 앙심과 육체적인 감사의 정이 섞인 심정에 따라서, 카라마조프 영감 집으로 분만하러 가는, 그 신비하고도, 동물적이고도, 형용키 어려운 심정의 움직임이란, 조각의 주제, 고대 예술다운 단순한 주제가 아닐가? '복수와 속죄'의 모양이 전개해 나가다 중단되었다가, 다시 이어 나가는 기둥머리의 조각이 아닐까? 이게 첫번째 삽화,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조각 중에 있는 '여성'의 창조처럼, 신비롭고, 위대하고 장엄한 삽화야, 이에 대응하는 두번째 삽화는 스무 해 남짓하게 지나서 일어나지. 미친 여인이 낳은 아들, 스메르댜코프가 카라마조프 영감을 죽이고, 카라마조프네 집안에 치욕을 가하고, 좀 뒤에, 카라마조프 영감 집의 마당에서 한 그 분만과 똑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스런 조각과 같은 행위, 또한 어렴풋하고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갖춘 행위가 계속되지, 다시 말해서 범죄를 완수한 스메르댜코프가 목을 매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에는, 뒤에 가서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서 활짝 꽃필 것이 집중적으로, 아직 찡그린 우울한 형태로, 많이 있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중세기의 예술가들과 같은, 시대에 앞선 침울성이 보이는데, 이 침울성을 제자들이 언젠가는 밝게 하겠지."





